고등학교 시절 독일어를 배웠다.
물론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독일어를 가르쳐 주셨던 최경 선생님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오셨던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적에 내가 봐도 그 시절 한국 사회에 대해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보였다.
체벌이 난무하던 그 시절, 어린 날의 잘못들을 너그러이 허용해 주셨던 선생님의 넓은 마음도 기억난다.
이후 이모부가 선물해 주신 『나의 한국 현대사』로 유시민을 알게 된다.
군인이었던 이모부께서 "이 사람에게 너무 빠지면 안 되지만 책은 읽어볼 만하다"라는 본인조차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그 책의 저자인 유시민을 포함하여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독일의 유학파다.
독일의 교육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길래 니체를 포함한 철학의 중심지이며
히틀러를 포함한 가장 잔혹한 진영의 본거지였을까.
나치당이 탄생한 뮌헨의 나치 박물관에 매료되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1박 2일 동안 나치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낸 뒤 뒤늦게 이곳을 찾았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도서관에 입장할 때 가방을 들고 가지 못한다.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자 화려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깔끔하고 청렴하기까지 한 느낌의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청소부가 말을 건다.
방금 찍은 흉상이 처음으로 활자 인쇄술을 만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라고 알려 준다.
그 청소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또 한번 독일의 실용적인 인상을 만든다.
뮌헨 박물관 도서관 내부조차 실용적이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많은 역사적 언론 페이퍼들을 쉽게 볼 수 있게 해놓은 것도 개인적으로 추측했던 전범국의 이미지에 위배되었다.
사실 뮌헨 나치 박물관을 가기 전까진
독일이 본인의 과거를 조금은 숨기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지만,
세계 어느 나라의 나치 박물관보다 방대하고 자세한 자료들에 내 편견은 산산이 깨지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너무나 실용적이라 차가워 보이기만 하는 도서관 책상 위로
따뜻한 창가의 햇살이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