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다야?'
'한강이 이것보다 백 배는 낫네.'
'몬트리올에 가도 이런 거 있는데…'
이게 계속된 나의 반응이었다. 어디서? 바로 처음 간 유럽에서.
나 자신도 이런 내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에펠탑, 런던아이, 폼페이… 그런데 이미 40이 넘는 생애 동안 조금이나마 본 건 있어서 그런지, 사진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본 것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로맨틱한 파리와 런던, 로마는 이미 로맨스의 씨가 말라버린 나에겐 시각적 자극, 그 이상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여행에 반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 아들 녀석이었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하네 마네 나랑 실랑이만 벌이는 아이였는데, 프랑스에 가서 베이컨에 달걀을 곁들인 아침 식사를 내오는 게 아닌가. 교통카드 및심카드 앱을 깔 때도 참을성이 0에 수렴하는 나를 달래어 내 핸드폰에 설치해 주고, 길을 갈 때도 보조 배터리까지 챙겨간 아들 덕분에 척척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내가 엄마 문제 해결해 주는 사람이야?" 우리 아들 왈,
"나는 대신 돈 내고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하잖아."
우리의 분업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유럽 여행 경비를 다 마련한 기특한 내 첫째 아들이다. 유로 환율을 듣곤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툴툴댔지만, 아들 덕분에 영국에선 맛있는 피시 앤드 칩스, 이태리에선 카르보나라와 밀푀유를 맛볼 수 있었다. 내 외국어 발음이 구리다면서 의사소통도 책임지고 대중교통 티켓도 척척 끊어주었다.
그러나 2주간의 여행에서 어떻게 화목한 순간만 있었을까. 아들 덕에 프랑스에선 제대로 된 베이커리에서 빵도 먹지 못했고, 이태리에선 아들의 최애인 카르보나라만 먹어 입에 물릴 지경이었다. 침대가 하나만 있는 방에선 소파베드에 누가 누워 잘 건지 투닥거렸고, 날씨가 너무 추운 날에 탄 2층 관광버스에서 나는 1층, 아들은 2층에 앉아 따로 갔다 (그때서야 우리 아들의 고집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깨달았으니, 이래서 여행이 좋은 거구나, 으흠).
가장 큰 위기는 이태리 카프리섬에서 있었다. 섬 중턱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길을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아들은 왜 내 폰을 당장 애플로 바꿔야 하는지 짜증 섞인 훈계를 끝도 없이 해댔다. 서로 피곤하니 그만하자고 쉴새없이 경고하고 나서야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철골뿐인 에펠탑 안에서 점심과 함께 나온 와인을 마시며 찡그리는 아들 표정을 보니 얼마나 웃기던지. 베르사유 궁전에선 시차 적응 때문에 한참을 둘이 같이 벤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다. 루브르에선 비행기 시간에 맞추느라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모나리자 그림만 찾아 사진 찍는 미션에 성공했을 땐 어찌나 뿌듯했는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런던에서 템스강을 거닐며 셀카를 찍고, 콜로세움과 폼페이에선 발 빠른 아들녀석 꽁무니만 쫓아다녀도 재미있었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찍은 사진이 못 나왔다며 툴툴거리는 아들 녀석에게 화가 나기보단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 실실 웃음만 나왔다. 체력이 안 좋은 나를 배려해 중간중간 호텔에서 종일 뒹굴며 아무것도 안 해도 신났고, 로마에서 시켜 먹은 한국 음식이 너무 맛없다며 불평하면서도 키득거렸다. 전철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여행객이 정치 얘기를 할 때는 아들과 같이 조마조마해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였다.
"난 너랑 같이 와서 제일 좋았어. 너랑 찍은 셀카가 보물이야."
"나 이혼한 싱글대디처럼 나왔는데. 난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은 게 제일 좋았어."
"다음에 또 엄마랑 여행 가자, 둘이만. 갈 거지?"
"아니, 무조건 친구들이랑 같이 갈 거야! 아, 엄마가 돈을 낸다면 뭐…"
친구들과 갈 수도 있었지만, 엄마와의 여행을 선택한 아들. 난 아들에게 선택받은 엄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 같다. 아니, 죽어서도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