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3대 가치는 가성비, 효율성, 생산성이다.
그냥 좋은 물건보다는 그 좋은 걸 얼마나 싸게 샀는지가 중요하고, 사람 없는 방에 불이 켜져 있거나 양치하면서 물을 줄줄 틀어놓는 식의 낭비를 참지 못한다. 생산성도 같은 맥락이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면 (가성비) 그게 곧 효율성을 올리고 생산성을 담보한다. 생산성이 얼마나 중요하면 '놀면 뭐 하니' 같은 관용구가 예능 프로로까지 만들어졌을까. 놀면 뭐 하긴 편하고 좋겠지.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고 놀면 그게 도무지 마음 편하지 않은 인종이 바로 한국인이다.
그런 한국에서 나고 자라 30대 후반에 캐나다로 온 내가, 세상 쓰잘데기없다고 생각했던 3가지가 있다. 이중언어, 영국 왕실, 그리고 원주민 - 정확히는 land acknowledgment.
첫째, 이중언어. 작은 상품까지 포장지에 구태여 프렌치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비효율성.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어차피 프렌치 쓰는 사람도 영어는 기본으로 할 텐데. 둘째, 영국왕실. 21세기에 왕이며 왕실이 뭐 어쩌라는 소꿉놀이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독립하려고 30년 넘게 피 흘린 나라 출신인 나로서는 왜 구태여 속국을 자처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 원주민. 공기업에 몸 담은 이후 수많은 비효율을 목격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시간 낭비는 회의 때마다 하는 land acknowledgment였다. 심지어 요식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달마다 이사회 멤버들한테 새 버전을 준비해 오라고 하는데 그걸 누가 할 건지 찾는 것도 일, 준비됐냐고 쪼아대는 것도 일, 준비 안 됐으면 갑자기 땜빵하는 것도 전부 일이다. 어떤 생산성도 없는 일 = 낭비. 원주민 못지않은 제국주의/식민주의의 희생자였던 아시아 이민자인 나로서는,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진 적도 없는 빚을 갚으라는 생떼를 당하는 기분이라 어이가 없었다. 유럽 정착민들이 나쁜 놈인 거 알겠는데 어쩌라고. 걔들 후손이랑 얘기해, 왜 새로 오는 이민자들한테까지 이걸 들이밀어. 우린 너네 착취해서 단물 빤 적도 없는데. 그냥 돈 싸들고 와서 이 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 주는 일개미일 뿐이라고!
하지만 시민권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그간 철저히 무가치하다고 믿었던 3가지가 실은 이 나라의 기반이었다는 것을. 그렇게들 얘기한다 - 아무리 여기 오래 살아도, 학교를 다니면서 정규 교육을 받거나 현지 회사에 풀타임 잡을 잡아 캐나다인들과 일상적으로 어울리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캐나다에 정착한 이후 9년간 일했지만 여전히 몰랐고, 심지어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캐나다는 1960년대부터 다문화주의를 주장했고, 그 뿌리는 더 깊다. 모든 이방인을 한솥에 때려 넣고 미국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미국의 용광로 정책과는 다른 모자이크 정책. 그건 캐나다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미국인보다 현명하거나 어질어서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처음에는 다양성이 싫었다. 소수 프렌치 싹 밀어버리고 싶었고, 원주민들은 싹 동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를 거쳐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뼈 아픈 기반 위에 다양성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1500년대 초, 영국과 프랑스는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에 왔다. 발견은 영국이 빨랐지만 (1497년) 정착은 프랑스가 빨랐다. 프랑스가 이미 노바스코시아, 퀘벡 지역에 로열 뉴 프랑스를 세운 다음에야 (1604-8) 영국인들이 뒤따랐다 (1610). 서로 이 땅은 영국 왕 거다, 아니 프랑스 왕 거다, 주장하면서 모피 상권을 두고 박 터지게 싸우고, 영국 왕은 허드슨베이에 모피 독점권을 준다. 뒤늦게 온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다. 100년 정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본국에서도 결심을 한다. 누가 북미의 진정한 주인인지 결판을 내자고. 양측 지휘관이 모두 전사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1759년, 영국이 최종 승리한다. 영국은 냉큼 로열 뉴 프랑스의 이름을 퀘벡으로 바꿨다. 하지만 이미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은 어쩔 것인가. 싹 다 인종청소? 이미 식민지에서 대리전쟁 치르느라 자원이 극심하게 낭비된 것이 첫 번째 문제, 개척 생활에는 언제나 손이 모자란 게 두 번째 문제였다. 결국 영국 의회는 1774년 퀘벡 액트를 통과시키면서 프랑스인들에게 계속 가톨릭 믿고, 프랑스법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다양성 인정의 시발점인 셈이다.
그리고 2년 뒤. 미국이 독립하겠다고 드릉대면서 미국 왕당파가 물 밀듯이 밀려 들어온다. 프랑스인들 역시도 이방인을 포용하는 관용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점은 1812년, 미국의 캐나다 침략이었다.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는 순간 내부의 적들은 모두 동지가 되었다. 당장 내가 죽을힘을 다해서 일군 내 삶의 터전과 내 가족은 지켜야 하니까 더는 프랑스계고 영국계고 원주민이고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영국에서도 미국과 대리전쟁을 치러주는 캐나다에 군대를 보내는 한편 방위 시설 구축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후 캐나다는 세계 1차 대전을 통해 하나 된 국가로서 정체성을 쌓아 올렸고, 2차 대전 때는 당시 대다수 이민자들의 모대륙인 유럽을 구원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당당한 국가로 우뚝 섰다.
무엇 하나 공짜는 없었다. 영국계, 프랑스계, 원주민들은 피 흘린 대가로 국가 기반을 세웠다는 명분과 권리를 획득했고, 그게 다시 캐나다를 하나로 묶는 가치가 됐다.
캐나다 정부는 1774년 퀘벡 액트에 이어 1969년 이중언어 액트를 통과시켜 공용어로서 프랑스어의 위치를 인정했다. 1970년에는 프랑스어 국가들의 연합체인 라 프랑크포니까지 설립하면서 프랑스계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 그 결과 1980년,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퀘벡 분리 투표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앞서 프랑스계에 대한 예우가 없었다면 이 나라는 진작 쪼개졌을 것이다.
영국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이유도 알았다. 법치주의,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운 1215년 마그나 카르타의 전통을 빌려 쓰고 싶은 것이다. 덕분에 '신생이지만 우린 미국 같은 듣보잡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나라'라는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다. 영국도 미국과의 전쟁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미국 왕당파들이 대거 이민 오면서 캐나다 건설에 기여했다. 그 쓸모없어 보이던 구심점이 결국 트럼프 시대에 빛을 발했다. True North indeed strong and free. 찰스 왕의 선언으로 캐나다는 주권국가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미국과 선을 그을 수 있었다. 무역 75%를 진행하는 한 몸 같던 미국과 이렇게 틀어질 줄을 누가 알았을까. 신생 국가의 약점을 유래 깊은 제국과의 연결로 상쇄하려 했던 노력이 결과적으로 캐나다의 주권을 공고히 했다.
죽을 고생은 같이 했는데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residential school 같은 통수만 맞은 원주민들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자식들 뺏겨, 문화는 말살 당해, 캐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뼛속 깊이 새겨졌을까. 그걸 상쇄하기 위해 truth & reconciliation을 진행하고, 공공 분야에서 끝도 없이 이 땅은 너희 원주민들의 땅이고, 우리는 그걸 인정한다고 염불을 외게 된 것은 이래서였다.
캐나다는 시작부터 이민자의 나라였다. 영국계도, 프랑스계도, 미국 왕당파도, 도망 노예도, 해일처럼 밀려드는 인도인들도, 그리고 나 역시도 더 나은 삶을 찾아서 이곳에 모여들었다. 그 맥락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 된 캐나다인이다. 자식에게 합법적인 이중국적을 주기 위해 따는 시민권일 뿐이고, 이민업계에서 수년간 일한 구력이 있어 대충 봐도 객관식 20개 중에 15개를 못 맞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건 캐나다 국적을 선택한 이상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캐나다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규정한 모든 것을 샅샅이 공부한 덕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한심하게 여겼던 어떤 것도 실은 무가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캐나다 정착 이후 9년간 이민자로 산 나는 이제 캐나다인이 된다. 그건 캐나다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내 안에 뿌리박은 효율성을 좀 양보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캐나다가 왜 비효율적인 다양성을 고수하는지 분명히 알았고, 그게 결국은 나를 지켜주는 가치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FYI – timeline for citizenship application
2026 03 13: Submission 2026 05 28: Acknowledge of receipt 2026 06 03: Fingerprint taken 2026 06 30: Invitation for citizenship test 2026 07 11: Citizenship test 2026 10 15: Citizenship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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