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종합검진, 지금 시작합니다” by 보라해 작가
위의 제목은 엄정화가 2023년에 출연한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홍보 포스터에 나온
말이다. 그 드라마에서 차정숙은 나와 같은 40대의 나이에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며
간 이식을 받아 새 삶을 얻는다. 그녀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양육을 위해
포기했던 레지던트 의사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그때는 이 드라마가 나의 삶과 얼마나
비슷해질지 상상조차 못한 채 시청했었다.
당시 나는 그 드라마의 열혈팬으로, 매 회 차정숙의 용기에 감탄했었다. 머리 회전은
느리고 체력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시 의사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면서 얼마나 떨리고
긴장했을까. 새파랗게 젊은 20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자기 대학 동기가 교수가 되어
가르침을 받고 혼이 나는 건 어지간히 두꺼운 낯짝으로도 버티지 못할 일이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시청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작가가 부여한 “죽을병 이후 새 삶”이라는
장치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드라마를 보고 난 2년 후 나도 차정숙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녀와 같은 급성 질환은 아니지만, 단순한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더
복잡한 신체적 양상으로 흘렀고, 더욱이 이게 무엇인지 왜 일어난 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본 검사에서 모든 게 정상이니 내가 보고 싶은 전문의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오히려 내가 온갖 정보를 찾아 의사에게 처방해 달라고 하는 실정이었다. 이러니 대체 내가
언제 나을지는 당연히 알 수 없고, 오히려 병세가 심해지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실제로 최근 2년간 증세가 더 심해졌다).
여러 가지 증상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건강한 사람 에너지의 20~30퍼센트로만
살아간다는 점이다. 거기다 더 무서운 건, 이걸 휴대전화 배터리로 본다면 한 번
방전되었을 때 언제 다시 원래대로 충전될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가장
큰 성취감을 줬던 일도 할 수 없고, 집을 꾸민다거나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없다. 브레인 포그로 공부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에 나가 좋아하는 문화
활동이나 여행을 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티브이를 보거나 책만 읽거나 인터넷만 하는
나의 존재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는 말처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차정숙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쉼표를 찍고 있는 이 시점에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나는 인간이 영혼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주변의
가족, 친구 등 모든 사람도 자신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 선택된 존재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이 삶에서 이 챕터를 거치며 무언가를 배워야 함이 틀림없었다.
테라피스트와 함께 내 정체성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대해 얘기하면서 난 매튜 맥커너히를 맹비난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딸을
버린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그래, 난 그렇게 책임감이 강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직장도 포기하고 과감히 이민도 왔다. 사회의 성실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넓은 집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취미란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친구들을 만나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고 보니 이제 삶의 방향성을 바깥이 아닌 안으로 틀 때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내 인생의 종합검진이 시작된 것이다(사실 지금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
주어진 매순간 나의 앎과 경험 안에서 책임감이라는 가치 아래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내가 그토록 중시했던 사회의 인정, 역할 수행에 대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내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커리어적 목표도 사실은
인정욕구에서 나온 것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아이들도 이제
성년이 되어 엄마라는 역할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고 내 행복을 추구해도 괜찮다는 점도
깨달았다. 지금 살고 있는 넓은 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재정적 희생을 하고 있는지, 내가
행복한 데는 사실 좁은 집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가졌던 은퇴 자금에
대한 목표도 사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집착이었으며,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로도
조금씩 벌며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차정숙은 드라마의 말미에서 개원의가 되어 2층에선 환자를 진료하며 1층에선 자기가
가꾼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로 카페를 운영한다. 종합병원에 남아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보다는 의료 봉사를 하며 스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나도 그녀의 선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지금 에너지가 있을 때 그녀처럼 용기를 내어 조금씩 내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해 보려 한다. 따뜻한 바닷가에서 남편과 강아지들과 산책하며 예쁜
맛집과 카페를 가고, 사시사철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것이다. 이렇게 한인
문화센터에 한 달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일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처럼 다시
건강해진다면 해외 봉사, 유기견 봉사 및 고아원 봉사도 하고, 내가 가진 자격증들로
캐나다와 한국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