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넘어서부터, 삶이란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됐다. 평지를 유유히 흐르기도 하고, 거센 풍랑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복병 같은 바위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우회하기도 하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고 넓은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흘러가야 하는 강물 같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목표를 세우고, 일정한 시점에서 평가해 보는 일들을 멈추었다. 세상 일이 계획대로 되지도 않고, 되돌아보며 힘든 감정에 휘말릴 바에는, 생각 없이 내 삶의 흐름에 순응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내가 어디로 흘러 가는지는 몰라도 순간순간에 충실하다 보면, 어딘가에 다다라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나는 뭘 하고 살아온 걸까 하는 자괴감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했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나이대별로 주어진 인생의 과제에 충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나다움은 어디로 갔는지, 왠지 텅 빈 고목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한 헛헛함과 열정과 꿈이 없는 밋밋한 내 모습이 싫기도 하였다.
이런 내게 2023년 한 해 살아온 흔적을 찬찬히 뒤집어 보며 글을 써야 하는, 자의 반 타의 반 상황이 주어졌다. 최근 겪은 몇 건의 슬픈 죽음들로 내 마음은 축 쳐져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재미도 하나도 없었고 뭐, 퉁퉁거리는 자세로 끄적끄적 낙서만 해대다가, 나의 느낌이 아닌 올 한 해 새롭게 일어난 일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2023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직업의 전환이었다. 30년 넘게 해온 오피스업무와는 영 딴판의 day care 일을 하게 됐다.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고, 낯선 시도에 대해서 그닥 겁이 없는 성격인지라 망설임 없이 쉽게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나이가 든 내게 오피스 업무를 주는 회사가 없다는 뼈저린 현실인식에 기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었다. 나의 어릴 적 꿈 중 하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바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길, 따뜻한 사랑을 많이 주는 교사가 될 수 있길 바라며 나의 어릴 적 꿈 하나를 이룰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위안하였다. 처음 몇 달은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너무 이뻤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맛이 있었다. 내 인격의 성숙이 이 일의 기본인 듯해서 매일 아침 밝은 기분과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하였다. 또한 다양한 아이들의 특성에 맞추어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길 바라며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도 들여다보면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들이 익숙해지고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내어주고, 인내하고, 깎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내 안에서는 다시, 채워지지 않는 성장에 대한 갈망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어릴 적 꿈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달라져 있는 나 사이의 큰 간격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희생적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끊임없이 배우면서 나를 충전시킬 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창작할 때 훨씬 생동감을 느끼는 개인주의자라는 걸.
이런 내 속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을 때 글쓰기 교실을 접하게 되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행동파인 나인데도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은 있었다. 글쓰기도 내 어릴 적 꿈 중의 하나였지만 또 시행착오 하는 건 아닌지, 과거에 꿈꿨던 나와 현재의 변질된 나 사이의 차이를 다시 또 인정하게 되는 건 아닐지..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교실, 첫 수업 후 기대치 않았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한 시간가량의 정해진 주제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도 얼마만의 일인지. 미적거리고 하기 싫지만, 나를 몰아붙여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난 뒤에는 혼자서 성취감을 만끽하면서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겉만 맴돌고 별 의미 없는 잡담이 아닌, 진지하게 내면을 들어다 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너무 좋았다. 오랫동안 못 만난 그리운 친구를 우연히 갑작스레 만나, 회포를 푸는 듯한 반갑고 흥겨운 시간들로 인해 나는 즐거워졌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은 안 읽던 책들도 다시 꺼내 들게 하였다. 독자의 관점이기만 했던 독서에서 작가의 관점으로 다시 읽게 되니 단어 하나하나, 문장의 구조가 다시 보이게 되었다. 특별한 주제 없이, 그때그때 내 감정이나 굵직한 사건들을 적어 내려가던 일기와는 사뭇 다른, 멘토가 있는 글쓰기 교실은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고, 글 쓰는 기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듯해서 지친 내게 삶의 활력을 주었다. 특히나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제한된 영어 실력으로 나 자신을 표현 못 했던 답답함과 무력감에서, 많이 녹슨 모국어일지라도 마음껏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갖게 되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왜 한글로 글을 쓸 생각을 진작 못했는지..
이런 기쁜 마음을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에게 알렸다. 그녀 역시 글을 잘 썼고, 2년 전 만났을 때 하루 30분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해서 내심 엄청 부러웠었다. 친구는 이쁜 마음이 담긴 멋진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병종 화가의 서화집처럼 멋진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너의 그런 책을 기대해 본다.” 나도 역시 신영복 교수의 서화 에세이집들을 매우 좋아해서 몇 번씩 꺼내 글을 읽고, 그림 감상을 하곤 하지만, 거창하게 책을 만들어 보겠다고는 꿈을 꾸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친구의 기분 좋은 응원에 단순히 감사를 표했을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연말 친구들 모임에서 글쓰기 교실 자랑하면서, “열심히 글 쓰고 언젠가는 책을 낼 거야”라고 아무 생각 없이 허세를 부리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무슨 말을 뱉은 거야, 아니지, why not me, 그래 꿈을 꾸는 거야. 따뜻한 봄 햇살 같은 글과 산들바람 같은 그림들이 어우러지는 멋진 책을 만드는 꿈! 그 순간, 내 속에서 뭔가 물꼬가 확 트이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답답하게 정체되어 있어서 지루하기 만한 회색빛 일상에 반짝, 햇살 한 줌 흘러 들어오는 듯하였다.
2023! 처음으로 글쓰기 교실을 시도했다. 우연하게 시작한 이 일로 내 안에 작은 꿈의 씨앗이 심어졌다. 2023년은 참 의미 있는 해였음을 살며시 인정해 본다. 인생 후반에 내 삶을 설레게 해주는 무지개 같은 꿈으로 인해 삶이 풍요로울 수 있는 시발점이 된 한 해였음을. 꿈은 이뤄내는 것이 아닌 지켜내는 것! 마음에 별 하나 심고, 그 별로 행복해하는 어린 왕자처럼 난 글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껏 사랑하기로 하였다. 그 결심과 함께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이다”라는 랭스턴 휴의 명언을 마음속에 각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