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봉사자의 밤.
재깔재깔,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속에서 문득 논어를 떠올렸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라고 했던 공자님 말씀. 돌아보면 부단히도,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근심하고 노여워했다. 3년 전 한글책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도, 올 한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도, 좋은 뜻으로 열심히 하는데 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지 원망하고 낙담했다. 하지만 이날이 되어서야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간 듯이 세상을 바로 보게 됐다.
사람은 대의명분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명분이 열정을 만나면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다. 2021년 한인문화센터 집행부가 단 일 년 만에 한글책 4천 권을 모아 도서관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 움직임을 꾸준히 이어가고 생활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자잘하고 일상적이며 손에 잡힐 듯이 분명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오늘 느낀 것과 같은 실감. 임원도 봉사자도 각자의 신념에 따라 도서관을 지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하나하나가 고유한 생각과 감정과 일상을 지닌 개인들이다.
모두의 이유는 다르다. 책이 좋아서, 도서관이 좋아서, 아이들에게 한글 공부를 시키려고, 친구에게 이끌려 와서, 와 보니까 사람들이 좋아서. 그중에서도 문화센터 부회장으로 봉사 중인 강정선님의 얘기가 마음에 남았다. 혹여 치매가 와서 영어를 잊기라도 하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없게 될까 봐 무서워서, 아이들이 모국어를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한글책 도서관을 지키고 싶다고. 그 사연이 시간을 거슬러, 2020년 말 처음 캘거리 한글책 도서관이라는 비전을 제시할 때의 내 출발점과 이어진다. 우리 애가 좋아하는 한글책을 마음껏 읽게 해주고 싶어서.
저마다 '나는 이기적이다, 이런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전부다'라며 고해성사를 하는 그 자리는 사실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내 속내가 계산적이고, 동기가 지극히 개인적이면 어떠랴. 결과적으로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봉사하고 있다. 다른 이들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겹겹이 쌓아 올린 일인칭으로 체험하면서. 내가 사람들 안에 들어간 것처럼,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온 것처럼, 타인이지만 자신인 것처럼, 삼인칭이지만 일인칭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어째서 모르고 있었을까, 이렇게 연결된 사람들을. 왜 진작 더 알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실감. 내가 한 일이 헛되지 않다는 실감. 느슨하게나마 이어져 있다는 실감. 우리 모두는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아끼고, 아이들을 사랑해서 여기 모였다는 실감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진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 미미하지만 착실한 실감에 마음이 촉촉해지고, 다시 새로운 씨앗을 싹 틔울 수 있는 토양이 된다. 따스한 공간에 따스한 사람들과 있다는 실감을 얻어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집에 돌아오는 길, 슬그머니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이 훈훈해진 건 온기를 나눠 받은 덕분이지만, 어쩌면 나 역시 그런 온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 밤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